■해석
편지를 보내며(정희량)
근래 압록강 가에서 삭막하게 지내다가
모래 먼지에 멀리 돌려 나루터를 물으려 하네
객지에서 우연히 한식의 비를 맞으니
꿈속에서는 아직도 고향의 봄을 기억하네
일생의 시름과 병에 흰머리만 늘어나는데
만 리의 시내와 산은 쫓겨난 신하를 정착하게 하네
바로 등한하고 게으름으로 곤궁하게 되었으니
운명이 시인을 곤궁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네
■원문
寓書(우서), 鄭希良(정희량)
年來索寞鴨江濱(연래삭막압강빈)
回首塵沙欲問津(회수진사욕문진)
客裏偶逢寒食雨(객리우봉한식우)
夢中猶憶故園春(몽중유억고원춘)
一生愁病添衰鬢(일생수병첨쇠빈)
萬里溪山著放臣(만리계산착방신)
直以疏慵成落魄(직이소용성락백)
非關時命滯詩人(비관시명체시인)
■글자풀이
- 濱: 물가
- 津: 나루터
- 偶: 우연히
- 愁: 근심
- 衰: 쇠하다
- 鬢: 귀밑털
- 著: 붙다
- 放: 쫓겨나다
- 直: 바로
- 疏慵: 등한하고 게으르다
- 落: 영락하다
- 時命: 운명
- 滯: 막히다, 빠지다
■감상
정희량(1469-1502)의 자는 순부(淳夫), 허는 허암(虛庵)이며, 해주가 본관입니다. 1492년에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했으나, 성종이 죽었을 때 올린 상소가 문제가 되어 유배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김종직의 문인으로, 권지부정자, 예문관대교, 예문관봉교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총명하고 학문에 박식하여 문예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음양학에도 밝았으며, 저서에는 ≪허암집≫이 있습니다.
이 시는 작가가 무오사화 때 사초문제로 탄핵을 받았는데 난언(亂言)을 알면서도 고하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의주에 유배 갔을 때 유배지에서 지은 작품입니다. 작가는 압록강 변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벌판에 모래 먼지가 일고 있는 진사(塵沙)에서 고향을 떠올리며 돌아가는 나루터를 묻고 있습니다.
객지에서 맞이하는 한식날은 고향의 봄을 더욱 또렷하게 떠오르게 하는데, 만 리 먼 곳으로 유배되어 온 자신의 처지는 시름과 병으로 흰머리만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락(零落)한 삶을 살아온 것도 자신의 등한함과 게으름이 만들어낸 결과이므로, 운명을 탓할 일은 아닐 것이라고 합니다. 유배지에서 느끼는 한 작가의 심회(心懷)가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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