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밤에 앉아(이항복)
밤새도록 조용히 앉아 돌아갈 길 헤아리는데
새벽달이 사람 엿보며 문에 들어 밝구나
갑자기 외기러기 하늘 너머로 날아가니
올 때는 응당 한양성에서 출발했으리라
■원문
夜坐(야좌), 李恒福(이항복)
終宵黙坐算歸程(종소묵좌산귀정)
曉月窺人入戶明(효월규인입호명)
忽有孤鴻天外過(홀유고홍천외과)
來時應自漢陽城(내시응자한양성)
■글자풀이
- 宵: 밤
- 黙: 고요하다
- 曉: 새벽
- 窺: 엿보다, 보다
- 忽: 갑자기
- 鴻: 기러기
- 應: 응당, 마땅히
- 自: ~로부터
■감상
이항복(1556-1618)의 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白沙)·동강(東岡)이며, 경주가 본관입니다. 이제현의 방손(傍孫)이며, 이성무(李成茂)의 증손으로, 우리에게는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군되어 오성대감으로 잘 알려졌고, 한음 이덕형(李德馨)과의 일화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선조와 광해군 시대의 혼란한 상황을 몸소 겪은 명재상이며,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기지가 넘쳤다고 합니다. 1574년에 성균관에 들어갔고, 1580년에 알성문과에 급제, 승문원부정자, 예문관검열, 이조참판, 영의정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습니다. 저술로는 《사례훈몽(四禮訓蒙)》, 《주소계의(奏疏啓議)》 등이 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입니다.
이 시는 1618년에 관작이 삭탈되고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어 있던 시절에 지은 작품으로,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심정을 노래하였으나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화자는 밤새 잠이 오지 않아 묵묵히 앉아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생각으로라도 돌아갈 길을 헤아려 봅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어 새벽달은 방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고, 날이 밝아 하늘을 쳐다보니 겨울 외기러기만 날아갑니다. 아마도 저 외기러기는 한양성을 지나왔을 것이라 생각하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절절하게 묻어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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