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위팔처사에게 주다(두보)
살면서 서로 만나지 모사니
움직임이 삼성과 상성 같다네
오늘 저녁은 또 어떤 저녁이기에
이 등불의 빛을 함께 하게 됐을까
젊어서 힘쓰던 날이 언제였는지
귀밑머리는 벌써 하얗게 됐다네
옛 친구 찾으니 반이나 죽었고
놀라 탄식하며 속이 타는 듯하네
이십 년 만에 어찌 알았으랴
다시 그대의 집 마루에 오를 줄을
옛날 이별할 때는 아직 미혼이었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줄을 이었네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 친구 공경하니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를 묻네
주고받는 인사가 끝도 않았는데
아이를 시켜 술과 안주 차리게 하네
밤비를 맞으며 봄 부추 베어오고
갓 지은 밥에 누른 조까지 있다네
주인은 내게 얼굴 보기 어렵다며
한 번에 열 잔이나 따라주네
열 잔을 마셔도 취할 줄 모르니
그대와의 우정에 감격했나 보네
내일이면 산 넘어 서로 헤어지니
인간사 우리에게는 막막하여라
■원문
贈衛八處士(증위팔처사), 杜甫(두보)
人生不相見(인생불상견)
動如參與商(동여삼여상)
今夕復何夕(금석부하석)
共此燈燭光(공차등촉광)
少壯能幾時(소장능기시)
鬢髮各已蒼(빈발각이창)
訪舊半爲鬼(방구반위귀)
驚呼熱中腸(경호열중장)
焉知二十載(언지이십재)
重上君子堂(중상군자당)
昔別君未婚(석별군미혼)
兒女忽成行(아녀홀성항)
怡然敬父執(이연경부집)
問我來何方(문아래하방)
問答乃未已(문답내미이)
驅兒羅酒漿(구아라주장)
夜雨剪春韭(야우전춘구)
新炊間黃梁(신취간황량)
主稱會面難(주칭회면난)
一擧累十觴(일거루십상)
十觴亦不醉(십상역불취)
感子故意長(감자고의장)
明日隔山岳(명일격산악)
世事兩茫茫(세사량망망)
■글자풀이
- 參如商: 삼성(參星)과 상성(商星)
- 燈燭: 등불과 촛불
- 鬢: 살쩍, 귀밑털
- 髮: 머리털
- 蒼: 머리가 하얗게 센 모습
- 爲鬼: 귀신이 되었다(사망했다)
- 腸: 창자
- 焉: 어찌
- 載: 년(=年)
- 堂: 대청마루
- 行: 항렬
- 怡然: 기뻐하는 모양
- 驅: 몰다, 내쫓다
- 羅: 펼치다
- 漿: 마실 것, 술상
- 黃粱: 메조
- 累: 자주, 거듭
- 觴: 술잔
- 故意: 옛 우정
- 隔: 가로막다
- 山岳: 섬서성 화음시에 있는 화산
- 兩: 위팔처사와 두보를 지칭
- 茫茫: 아득한 모양
■감상
두보(712-770)의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으로, 공부원외랑 벼슬을 지내서 '두공부(杜工部)'라고도 합니다. 당나라 중기의 관리이자 문인으로 이백과 함께 '이두(李杜)'로도 병칭되며, 이백을 시선(詩仙), 두보를 시성(詩聖)이라고도 합니다. 이백이 두보보다 11살 연상이었지만, 이백의 재능에 감탄하면서 서로 시우(詩友)가 되었습니다. 도교적인 색채가 강한 이백의 시풍보다 유교적인 색깔이 강한 두보에게 유교 성인의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보를 이백보다 더욱 높이 평가를 하지만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각지를 유람하면서 전란을 겪는 등 파란만장하고 불우한 삶을 살았습니다. <강촌(江村)>, <고백행(古柏行)>, <강남봉이구년(江南逢李龜年)> 등 수많은 걸작을 남겼으며, 저서에는 ≪두공부집≫ 20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시는 두보가 위팔처사에게 주는 시인데, ‘위’는 성씨이고, ‘팔’은 형제의 서열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강희제 때의 주학령(朱鶴齡)이라는 학자는 ‘위팔처사’를 당나라의 은자(隱者)였던 위대경(衛大經)의 조카로 보았는데, 이 설이 더욱 설득력을 얻기도 합니다. ‘처사’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산림에 은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삼성(參星)과 상성(商星)은 하나가 뜨면 하나는 지는 별을 말합니다. 시인은 이처럼 위팔처사를 평생 서로 만나지 못할 듯했는데, 오늘 뜻밖의 만남에 기뻐합니다. 이십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귀밑머리는 하얗게 변했고, 옛 친구들 또한 세상을 많이 떠나서 놀라고 탄식도 나옵니다.
그대와 대청마루에 앉아서 그간 서로 안부를 물었고, 이제는 결혼하여 자식들도 많아져서 아버지 친구인 시인을 보고 어디에서 왔는지 공경하게 묻기도 합니다. 처사는 급히 아이들을 시켜 봄 부추와 누른 조까지 곁들인 주안상을 준비하게 하고, 반가움에 연신 술잔을 들이켭니다. 마셔도 취하지 않으니 서로의 깊은 우정에 감격한 듯 보이고, 내일이면 또 서로 헤어져야 하는 인간사의 막막함이 서글프게 다가옵니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지기(知己)를 만난 것도 잠시, 내일이면 다시 암담한 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시인의 아쉬움이 절절히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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