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화석정(이이)
숲 속의 정자에는 가을 이미 깊어
시인의 뜻이 끝이 없구나
먼 물줄기는 하늘에 닿아 푸르르고
서리를 맞은 단풍은 해를 향해 붉구나
산은 외로운 보름달을 토해놓고
강은 만 리의 바람을 머금었네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저물어가는 구름 속에서 소리가 끊어지네
■원문
花石亭(화석정), 李珥(이이)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山吐孤輪月(산토고륜월)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글자풀이
- 亭: 정자
- 晩: 늦다
- 騷客: 시인(=騷人)
- 楓: 단풍나무
- 吐: 토하다
- 輪月: 보름달
- 含: 머금다
- 塞: 변방
- 鴻: 기러기
- 斷: 끊어지다
■감상
이이(1536-1584)의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이며 덕수가 본관입니다. 흔히 신사임당의 아들로 잘 알려져 있으며, 조선 중기 이황과 더불어 가장 추앙받는 학자입니다. 어려서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고, 13세의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이후 호조좌랑, 예조좌랑, 부교리로 춘추기사관을 겸임하면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9번의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렸으며,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습니다. 당시 조선을 가치관의 미확립으로 인한 문제라고 보고 충분한 경제력과 튼튼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도덕적인 교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인의 영수였으나 당시 동인과 서인 간의 대립이 격화되었을 때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평생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성리학에 집중하였고, 저서로는 ≪성학집요≫, ≪격몽요결≫, ≪소학집주개본≫ 등이 있습니다.
이 시는 율곡이 8세에 경기도 파주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서 지은 작품입니다.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 유학자인 길재(吉再)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습니다. 길재 사후 그를 추모하던 서원을 세웠다가 폐허가 되었고, 율곡 이이의 5대조인 이명신(李明晨)이 세종 25년에 정자를 세우고 1478년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중수한 곳으로, 이숙함(李淑瑊)이 화석정이라 명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정자에는 가을이 깊어가는데 시인의 뜻은 끝이 없기만 하고 물줄기는 하늘에 닿을 듯이 푸르며 단풍은 점점 짙어만 갑니다. 정자 주변의 풍경을 전반부에서 잘 표현해주고 있으며, 이 작품의 백미는 후반부입니다. 경련의 ‘산은 외로운 보름달을 토해놓고, 강은 만 리의 바람을 머금었다’라는 부분이 당시 입에서 입으로 전송되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사계 김장생은 율곡의 <행장>에서 “일찍이 화석정에 올라가 시를 지었는데, 격조가 혼성(渾成)하여 시율(詩律)에 능숙한 사람”이라고 율곡을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변방의 기러기도 멀리 구름 속으로 날아가면서 우는 소리 또한 멀어지는 모습이 화석정 주변의 깊어가는 가을을 실감나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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