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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한문

장유, <곡박대관(哭朴大觀)>

by !)$@@!$ 2023.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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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박대관을 곡하며(장유)

 

함께 남쪽 고을 원으로 나갈 때에

그대는 용성 나는 금성으로

언제나 절절했던 어버이와 임금 생각

헤어져 있을 때도 서로의 우정 각별했네

서울에선 그 얼마나 교유가 성대했나

관각의 청현직 정말 영광스러웠지

어느새 모두가 지나간 자취

이 일 저 일 회상하니 눈물만 흐르누나

 

■원문

哭朴大觀(곡박대관), 張維(장유)

 

共佩炎州玦(공패염주결)

龍城與錦城(용성여금성)

君親長繫念(군친장계념)

散聚各含情(산취각함정)

京洛交游盛(경락교유성)

名途館閣榮(명도관각영)

居然摠陳迹(거연총진적)

萬事一沾纓(만사일첨영)

 

눈물

 

■글자풀이

  • 佩: 차다
  • 玦: 패옥
  • 繫: 매다, 묶다
  • 聚: 모이다
  • 含: 머금다
  • 摠: 모두
  • 迹: 자취
  • 沾: 더하다
  • 纓: 갓끈

 

■감상

   이 시는 망자인 박정(朴炡, 1596-1632)의 죽음을 노래한 3수의 오언율시 중에서 두 번째 작품입니다. 박정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대관(大觀), 호는 금주(錦洲)하곡(霞谷)입니다. 좌참찬 박동선(朴東善)의 아들이자 박세당(朴世堂)의 부친이며, 인조반정에 참가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이 되었고, 대사간과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기도 합니다.

 

   계곡은 박정을 인조반정이 일어난 계해년 봄에 처음 만났습니다. 계곡보다 아홉 살 연하이긴 하지만, 명철하고 예민한 그의 성품에 깊은 교분을 맺게 된 것입니다. 1629년에 박정은 용성(龍城, 현재의 남원)부사로, 계곡은 금성(錦城, 현재의 나주)의 목사로 동시에 외직(外職)으로 갔던 시절이 있었는데(金坽, 계암일록(溪巖日錄)에 보면, “1629118, 맑고 추운 날씨였다. 조정에서는 또 한바탕 인사문제가 일어난 듯하였다. 상주의 정경세가 다시 이조판서로 관직을 옮겼다고 한다. 반면 장유는 나주목사, 박정은 남원부사, 유백증을 가평 군수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조정의 실세들이 모두 외직으로 쫓겨난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때 박정이 계곡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계곡과 박정은 서로가 나이 차이가 나고 부임지도 달랐지만, 군친(君親)을 생각하는 마음이 같았고 마치 곤륜산(崑崙山)의 옥 같은 강도를 지녔기에(谿谷集』 권25, <送羅夢賚宰江東>, “潘南崑玉姿, 烈火驗純剛.”) 충분히 허교(許交)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남쪽으로 부임하기 전에는 서신도 왕래하고 밤새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가 관각(館閣)의 벼슬자리를 영광스럽게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추억도 하나의 지나간 흔적에 불과하고, 과거에 망자와 함께 했던 여러 추억들을 떠올리니 슬픔의 눈물만 흘리게 된 것입니다. 계곡이 망자와의 추억과 일화를 떠올리며 망자의 죽음을 슬픔을 애도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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