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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한문

홍세태, <만월대가(滿月臺歌)>

by !)$@@!$ 202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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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만월대에서(홍세태)

 

만월대 앞 낙엽 지는 가을에

서풍에 남은 낙조가 사람을 근심하게 하네

산하에는 강감찬의 기상이 다했고

일월처럼 정몽주의 이름만 걸려 있네

 

■원문

滿月臺歌(만월대가), 洪世泰(홍세태)

 

滿月臺前落木秋(만월대전낙목추)

西風殘照使人愁(서풍잔조사인수)

山河氣盡姜邯贊(산하기진강감찬)

日月明懸鄭夢周(일월명현정몽주)

 

만월대(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글자풀이

  • 殘: 남다
  • 照: 낙조
  • 愁: 근심, 시름
  • 懸: 걸다, 매달다

 

■감상

   홍세태(1653-1725)의 호는 창랑(滄浪유하(柳下), 자는 도장(道長)이며, 남양이 본관입니다. 5세에 책을 읽고, 7·8세에 글을 지을 만큼 뛰어난 재주를 보였으나 증인층 신분이라서 출중한 재능에도 제약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작시(作詩)로 이름이 났기에 당대 김창협, 김창흡, 이규명 등의 사대부들과도 신분의 한계를 넘어 교유하기도 했습니다. 1675년 을묘식년시에 잡과인 역과(譯科)에 응시하여 한학관(漢學官)으로 뽑혀 이문학관(吏文學官)에 제수되었고, 둔전장(屯田長),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평생 가난한 삶을 살았던 홍세태는 시풍에도 영향을 미쳐 암울한 분위기의 시들이 많았고, 신분의 한계와 좌절에서 오는 사회부조리에 대한 갈등은 우수(憂愁)와 감분(感憤)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위항문학(委巷文學) 발달에 기여하였고, 위항인의 시들을 모아 해동유주(海東遺珠)라는 시선집을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저서로는 죽기 전에 자신의 시문집을 엮어서 부인에게 자서(自序)를 맡긴 유하집14권이 있습니다.

 

   이 시는 1705년에 홍세태가 옹진군의 둔전장으로 부임해 가는 길에 만월대에 올라서 쓴 작품입니다. 만월대는 개성시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공궐 터로 고려 태조가 창건하여 거처하던 곳입니다. 늦가을 만월대에 올라 보니 가을바람에 지는 낙엽과 낙조가 사람의 마음을 근심케 합니다. 거란을 물리쳤던 강감찬의 기상이 사라졌고, 고려의 절의를 지켰던 정몽주의 이름 석 자만 남아 있습니다. 작가는 고려왕의 주된 거처였던 만월대에 올라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 또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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