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산당에서 병이 들어 일어나 짓다(이언적)
한평생의 뜻과 일은 경전을 궁리함에 있어
구구하게 이익과 명예를 구하지 않았네
명선과 성신을 공맹에게 바라고
치심과 존도는 정주를 사모했네
통달해서 세상을 구제해 충의에 의지하고
궁하면 산으로 돌아와 성령을 길렀네
어찌 험하고 어려움을 생각하겠는가
깊은 밤 베개를 밀치고 앞 난간에 기대어보네
■원문
山堂病起(산당병기), 李彦迪(이언적)
平生志業在窮經(평생지업재궁경)
不是區區爲利名(불시구구위리명)
明善誠身希孔孟(명선성신희공맹)
治心存道慕朱程(치심존도모주정)
達而濟世憑忠義(달이제세빙충의)
窮且還山養性靈(궁차환산양성령)
豈料屈蟠多不快(기료굴반다불쾌)
夜深推枕倚前楹(야심추침의전영)
■글자풀이
- 窮: 궁구하다
- 利名: 이익과 명예
- 希: 바라다
- 慕: 사모하다
- 朱程: 주자와 정자
- 達: 통달하다
- 濟: 구제하다
- 憑: 의지하다, 기대다
- 豈: 어찌
- 料: 생각하다
- 蟠: 서리다, 두르다
- 推: 옮기다
- 倚: 의지하다
- 楹: 난간
■감상
이언적(1491-1553)의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이며, 여주가 본관입니다. 1514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고, 예조판서, 형조판서,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입니다. 주희(朱熹)의 주리론적(主理論的) 견해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만의 학문적 세계를 펼쳐나갔고, 이언적이 벌인 태극의 개념에 관한 논쟁은 조선 성리학사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개념 논쟁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이언적은 조선시대 성리학을 정립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고, 주희의 주리론적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에게로 계승하면서 영남학파 성리설에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해동잡록≫에는 “이언적의 사람됨이 천성적으로 뛰어났고, 학문도 정심(爲人忠孝出天, 學問精深)”하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는 24세에 과거에 급제한 후 병이 들어 산에 있는 집에서 지은 작품입니다. 화자는 한평생 포부와 일은 오로지 경전을 궁구하는 것이었고, 구차하게 명리(名利)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자와 맹자에게는 명선(明善)과 성신(誠身)을 배우고, 주자와 정자에게는 치심(治心)과 존도(存道)를 배웠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벼슬길에 나아가서 세상을 구제하여 충의를 실현하고, 만약에 궁하면 산으로 돌아와서 성정을 기를 것이니, 어찌 험하고 어려운 것을 걱정하겠는가라고 합니다. 많은 생각에 밤잠을 못 이루고 베개를 밀치고 밖으로 나와 난간에 기대면서 시인의 포부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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