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절명시(조광조)
임금을 아비처럼 사랑하고
나라를 집안처럼 걱정했네
밝은 해가 아래 땅을 내려다보니
충심을 환하게 비춰 줄 것이네
■원문
絶命詩(절명시), 趙光祖(조광조)
愛君如愛父(애군여애부)
憂國如憂家(우국여우가)
白日臨下土(백일림하토)
昭昭照丹衷(소소조단충)
■글자풀이
- 臨: 내려다보다, 낮은 데로 향하다
- 昭昭: 밝게 빛나는 모양
- 丹衷: 충심(忠心)
■감상
조광조(1482-1519)의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이며, 한양이 본관입니다. 조선 중종 때 도학정치를 주장한 급진적인 개학정책을 펼쳤으며, 김굉필에게 학문을 배우며 ≪소학≫과 ≪근사록≫을 중시하면서 김종직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의 영수가 되었습니다. 1510년에 사마시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갔고, 전적, 감찰, 예조 좌랑 등을 역임했습니다.
조광조는 훈구파를 억제하기 위해 현량과를 실시하고 위훈을 삭제하는 등의 급진적 개혁 정치를 펼쳤는데, 이후 훈구파는 사림파의 과격한 언행과 정책에 혐오를 느낀 중종의 위세를 등에 업고 기묘사회를 일으키면서 유배지인 능주(화순)에서 사사(賜死)되었습니다. 그는 유교를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치주의(至治主義)에 입각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으며,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등과 함께 ‘동방사현(東方四賢)’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시는 사약을 받고 목숨을 끊을 때 지은 작품입니다. 작가는 임금에 대한 마음이 아버지와 같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생을 마감하는 생황이지만, 밝은 해가 땅 아래를 비춰주면서 화자의 충성스러운 마음도 환히 비춰줄 것이라고 합니다. 죽음 앞에 선비의 고결한 뜻을 모두 펼치지 못한 처절한 안타까움이 숨어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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