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선죽교(이개)
번화했던 지난 일들은 이미 헛것이 돼 버렸고
춤추던 집이나 노래하던 무대는 들풀 속에 묻혔네
오직 잘려 남은 다리의 이름은 선죽교로
반 천 년의 왕업은 한 사람인 문충뿐이구나
■원문
善竹橋(선죽교), 李塏(이개)
繁華往事已成空(번화왕사이성공)
舞館歌臺野草中(무관가대야초중)
惟有斷橋名善竹(유유단교명선죽)
半千王業一文忠(반천왕업일문충)
■글자풀이
- 繁: 번성하다
- 華: 화려하다
- 空: 비다, 헛되이
- 舞: 춤추다
- 館: 집
- 斷: 자르다, 끊다
■감상
이개(1417-1456)의 자는 청보(淸甫)·백고(伯高), 호는 백옥헌(白玉軒)이며, 한산(韓山)이 본관입니다. 목은 이색(李穡)의 증손이자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글을 잘 지었기 때문에 훈민정음 제정에도 참여를 하였습니다. 집의, 집현전부제학 등을 역임하였고, 노량진의 민절서원(愍節書院)과 홍주의 노은서원(魯雲書院)에 제향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고려말에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하고 오다가 이방원이 보낸 사람들에게 철퇴를 맞아 숨진 곳으로, 돌다리에는 아직도 정몽주의 혈흔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다리 동쪽에 한석봉의 글씨의 비(碑)가 있고, 다리 옆 비각에는 정몽주의 사적(事蹟)을 새긴 비석 2개가 들어 있습니다.
이개는 선죽교에서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며 이 작품을 썼습니다. 고려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니, 수도 개성도 번성했던 화려함이 사라져버린 채 헛것처럼 되어 버렸고, 기생들이 춤추던 집, 노래하던 무대도 모두가 들풀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오직 선죽교만이 남아 있지만, 그것마저 한쪽이 잘려 버렸고 이름만 남게 된 것입니다. 오백 년의 왕업 대부분이 사라져버렸지만 정몽주의 충절은 아직도 흔적을 남겨 두고 있다면서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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