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봄날 낮에 홀로 앉아(송익필)
낮이 길어 새는 소리가 없고
비 넉넉하여 산은 더욱 푸르네
일이 없으니 도가 형통함을 알겠고
거처가 조용하니 마음이 밝음을 깨닫네
해는 중천에 떠서 수많은 꽃이 나타나고
못이 맑으니 모든 형상이 드러나네
지난날 언어는 천박했으나
말없이 이 사이의 뜻을 알겠노라
■원문
春晝獨坐(춘주독좌), 宋翼弼(송익필)
晝永鳥無聲(주영조무성)
雨餘山更靑(우여산갱청)
事稀知道泰(사희지도태)
居靜覺心明(거정각심명)
日午千花正(일오천화정)
池淸萬象形(지청만상형)
從來言語淺(종래언어천)
黙識此間情(묵식차간정)
■글자풀이
- 餘: 넉넉하다
- 更: 더욱
- 稀: 드물다
- 泰: 태괘(음양의 조화로 만물이 형통하는 괘)
- 覺: 깨닫다
- 池: 연못
- 淺: 천박하다, 얕다
- 黙: 조용하다
■감상
송익필(1534-1599)의 호는 구봉(龜峰), 자는 운장(雲長)이며, 여산이 본관입니다. 할머니가 안돈후(安敦厚)의 천첩 소생이라 신분이 미천했지만, 아버지가 안처겸(安處謙)의 역모를 고발하여 공신에 올랐기 때문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송익필은 재능이 비상하고 문장에도 뛰어나서 동생인 송한필(宋翰弼)과 함께 문명을 떨쳤고, 명문가와도 폭넓은 교유를 하였습니다.
송익필은 시는 이백(李白)을 모범으로 삼고, 문장은 좌구명(左丘明)과 사마천(司馬遷)을 본받았습니다. 자신의 학문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여 고관귀족에게도 당당했고, 최경창, 백광훈, 최립, 이순인, 윤탁연, 하응림 등과 함께 선조 대의 팔문장가(八文章家)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저서에는 ≪구봉집(龜峯集)≫이 전하고, 시호는 문경(文敬)입니다.
이 시는 봄날 낮에 홀로 앉아 있다가 심회가 일어서 지은 작품입니다. 따뜻한 봄에 낮이 길어져서 새는 울지 않고 비 내린 뒤 바라본 산은 더욱 푸르게 다가옵니다. 아무런 일이 없으니 도가 형통한 것을 알게 되었고 사는 곳이 조용하니 마음 또한 환하게 됨을 깨닫게 됩니다.
해는 중천에 떠서 수많은 꽃들이 자신들의 참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연못 또한 맑아서 모든 형상들이 드러납니다. 지난날 화자가 도의 깨달음을 말했던 그러한 언어들은 천박하게 느껴졌으니, 지금은 말없이 고요함 속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봄날에 자연물을 바라보며 느끼는 소회를 읊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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