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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한문

서거정, <하일즉사(夏日卽事)>

by !)$@@!$ 202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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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여름날에 짓다(서거정)

 

잠시 날이 개니 주렴과 휘장에 햇빛이 반짝반짝

짧은 모자 홑적삼에 더위가 사라지네

껍질 벗은 죽순은 유심이 비를 맞아 자라고

지는 꽃은 힘없이 바람 따라 날아가네

성명을 감춘 문자는 버린 지 오래되었고

시비를 일으키는 벼슬도 일찌감치 싫었다네

보압 향 다 타들어갈 때 잠이 막 깨니

손님은 적게 오고 제비만 자주 날아드네

 

■원문

夏日卽事(하일즉사), 徐居正(서거정)

 

小晴簾幕日暉暉(소청렴막일휘휘)

短帽輕衫署氣微(단모경삼서기미)

解籜有心因雨長(해탁유심인우장)

落花無力受風飛(낙화무력수풍비)

久拚翰墨藏名姓(구반한묵장명성)

已厭簪纓惹是非(이염잠영야시비)

寶鴨香殘初睡覺(보압향잔초수각)

客曾來少燕頻歸(객증래소연빈귀)

 

여름비

■글자풀이

  • 晴: 날이 개다
  • 簾: 주렴, 발
  • 幕: 휘장, 막
  • 暉: 빛나다
  • 籜: 대 꺼풀
  • 拚: 버리다
  • 翰墨: 문한(文翰)과 필묵(筆墨), 글을 짓거나 쓰는 것
  • 藏: 감추다
  • 厭: 싫다
  • 簪纓: 관원이 쓰던 비녀와 갓끈, 고관(高官)을 말함
  • 惹: 이끌다
  • 寶鴨: 향로 이름
  • 殘: 해치다, 죽이다
  • 睡: 자다
  • 頻: 자주

 

■감상

   서거정(1420-1488)의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또는 정정정(亭亭亭)으로, 대구가 본관입니다. 조수(趙須)와 유방선(柳方善) 등에게 배웠으며, 천문(天文)과 지리(地理), 의약(醫藥)과 복서(卜筮), 성명(性命)과 풍수(風水) 등 다양한 학문세계를 이루었습니다.

 

   문장과 시에 뛰어나 서거정의 학풍은 15세기 관학(官學)의 분위기를 대변해 주었고,, 정치적으로도 훈신(勳臣)의 입장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동문선(東文選)을 편찬하여 우리나라 한문학의 독자성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형조판서, 좌참찬,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으며, 시문집으로 사가집(四佳集)이 전해집니다.

 

   이 시는 무료한 초여름에 잠이 들었다가 깬 다음에 지은 한시입니다. 초여름에 내리던 비가 멈추고 보이는 세상은 주렴과 휘장에 햇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짧은 모자에 홑적삼을 입고 있는 화자의 모습에서 시원함을 느끼게 되고, 비 온 뒤에 부쩍 자라난 죽순의 모습과 떨어지는 꽃잎의 모습에서 여름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합니다.

 

   공명(功名)을 위해 달리던 글들도 버린 지 오래되었고,, 시비(是非)를 다투는 벼슬살이도 이제는 관심 밖에 일이 되었습니다. 초여름 한가로이 낮잠을 자다가 향이 다 탈 때가 돼서야 느지막이 일어나 보니, 찾아오는 벗은 보이지 않고 제비만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비 갠 뒤의 초여름의 모습이 한가롭고도 정겹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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