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가야산 독서당에서(최치원)
겹겹 바위틈을 미친 듯이 달려 봉우리를 울리니
사람의 말소리는 지척에서도 분간하기 어렵구나
늘 시비하는 소리가 귀에 이를까 두려워
짐짓 흐르는 물로 산을 다 두르게 하였다네
■원문
題伽倻山讀書堂(제가야산독서당), 崔致遠(최치원)
狂奔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롱산)
■글자풀이
- 狂: 미치다
- 奔: 달리다
- 疊: 겹쳐지다
- 吼: 울다
- 重: 겹치다
- 巒: 산
- 恐: 두려워하다
- 故: 짐짓
- 敎: 하여금
- 籠: 싸다
■감상
최치원(857-?)은 신라 말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자는 고운(孤雲)입니다.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아 12세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하였고, 고운, 나은 등의 문인과 교류하면서 문명(文名)을 떨쳤습니다. 귀국 후에도 외교문서 등을 작성하며 문장가로 인정받았고, 유교와 불교, 도교에도 이해가 깊었으며, 대표적인 글로는 <토황소격문>, <추야우중> 등이 있고, 저서에는 ≪계원필경≫이 있습니다.
이 시는 7언 절구의 한시로, 가야산의 독서당에 지었다는 제목처럼 신라 말 혼란한 시대 속에서 육두품 지식인으로서의 한계와 절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이 시는 아직도 홍류동 계곡 바위에 새겨져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화자는 거센 물소리로 인해서 주변의 가까운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산속에 은거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세상의 시비하는 소리들이 들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을 물로 온 산을 둘러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말소리를 물소리가 막아버리면서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화자는 세속의 소리들을 물소리로 차단해 버리면서 세상과 격리되어 자연에 은둔하고 싶은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단절의 마음 이면에는 신라 말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의 고뇌와 좌절을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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