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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지자(智者)가 필요한 사회

by !)$@@!$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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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척'과 '아는 것'

   조선시대에 어떤 사람이 그림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도화서(圖畵署)의 관원인 별제(別提)를 되고 싶어하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림을 잘 그린다고 허풍을 쳤고, 그림에 대한 전문가라면서 도화서 제조(提調)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제조는 그를 시험해보고자 병풍 그림 하나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의 <여산폭포도>였습니다.

 

   어떤 그림인지 알 리 없는 그는 다만 "훌륭하다!"만 연발하였는데, 그의 반응에 제조는 진정으로 그림을 잘 아는 자라고 생각하여 별제의 벼슬을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를 알아챈 그는 마지막으로 그림 속 폭포를 가리키면서 "이 명주 천을 빨아 햇볕에 말리는 모양은 더욱 기기묘묘해서 뛰어나군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제조는 어이가 없어 그를 당장 쫓아내 버렸고, 그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명엽지해≫에 '괘폭인포(掛瀑認布)'라고 전하는 이야기로, '그림 속의 폭포를 명주 천으로 오인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폭포의 모습이 흰 명주 천과 비슷해서 폭포를 햇볕에 말리는 천으로 잘못 알고 말한 것인데, 이는 괜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입니다. 제조의 긍정적인 기색을 알아차린 그가 합격의 쐐기를 박기 위해 던진 말이 화근이 되고 말았으니 안타깝기도 합니다.

 

   공자는 수많은 제자 중에서도 자로를 특히 걱정하였습니다. 그는 솔직하고 용기도 있었지만, 행동이 앞서고 잘난 척하는 것이 단점이라서 늘 스승의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아는 것을 자랑하기 좋아하고 성급했기에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이것이 "아는 것(是知也)"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은 연장자였기 때문에 스승으로서의 걱정이 더욱 앞섰나 봅니다.

 

지식

■지금 사회에 필요한 인재는 지자(智者)

   과거에도 그러했는데, 현재라고 덜할까 싶습니다. 성적지상주의를 조장하는 작금의 세태에서 지금은 더욱더 지식의 총량으로만 줄세우기식 무한 경쟁사회로 내몰기 때문에 아는 척하는 욕구는 더욱 강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식의 축적된 양으로 인생의 위너(winner)를 결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고착되었고 무식하면 오로지 쓸모없는 루저(loser)로 여기며, 그런 사람들을 무용지인(無用之人)으로 간주해 버립니다. 무식하면 무능하다고 치부되는 세상이기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구나 아는 것은 적어도 아는 척하려는 욕구만 강해지기 마련입니다. 본능에 가까운 욕망이 돼버린 것입니다.

 

   지금은 수많은 박사와 전문가가 난무하는 세상이라 살아가면서 모른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세상이 되었고,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지식을 얻기가 쉬워진 덕분인지 탓인지 모르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마치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몰라도 아는 척을 해야 하고, 그래야 온전하게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느낌입니다. 모르면 무조건 무시하고 보는 사회 풍조도 한몫했다고나 할까요. 머릿속 안다고 착각하는 지식들까지 일단 자신의 지식 영역에 포함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세상입니다.

 

   한 분야에 천착하여 지식을 쌓는 것은 마치 땅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땅을 파고 내려갈수록 그 분야에 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일지 몰라도 깊게 들어가고 나면 사방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이 꽉 막혀서 자신만의 왕국(?)에 갇힌 불통형 인간이 되기가 십상입니다. 차라리 낮게 파더라도 넓게 파가면서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는 지혜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식(知識)은 책 안에 있지만, 지혜(智惠)는 삶 속에 있습니다. 전자는 머리로 이해하지만, 후자는 가슴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사회는 지자(知者)보다 지자(智者)들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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