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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팥의 고마움

by !)$@@!$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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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이와 팥죽

   후한 광무제 때의 장수 풍이(馮異)는 영천 부성 사람입니다. 사람됨이 늘 겸손하여 전쟁의 공을 가릴 때는 홀로 큰 나무에서 쉬면서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광무제는 왕위에 오르기 전 무루정에서 전쟁을 치를 때 추운 날씨와 허기로 인해 지쳐 있었습니다. 그때 장군 풍이가 팥죽을 만들어 와서 광무제와 병사의 배고픔을 면하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호타하 강에서 도강(渡江)의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풍이는 보리밥으로 다시 광무제의 허기를 달래주었습니다. 후일 전쟁에 승리하여 왕위에 오른 광무제는 무루정의 팥죽과 호타하의 보리밥을 잊지 못하며 풍이에게 큰 상을 내립니다. 이 글은 ≪후한서≫, <풍이열전>에 전하는 이야기로, 어려움에 처했던 지난날을 잊지 말자는 충고를 담고 있습니다.

 

 

■팥의 여러가지 기능

   예부터 동지가 되면 팥죽을 쑤어 먹었습니다. 동지는 음에서 양으로 변하는 태양의 부활을 뜻하며, 동지가 지나야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해서 '작은 설'이라는 뜻의 아세(亞歲)라고도 합니다. 팥죽을 다른 말로 '두죽(豆粥)', 또는 '두탕(豆湯)'이라고도 일컫는데, 찹쌀가루로 만든 새알심[鳥卵心]을 팥죽에 넣어 끓여서 사당에 올려 제사를 지냈습니다. 건강에도 좋아서 고려시대의 문인 목은 이색은 "팥죽에 꿀을 타서 먹으면 음사(陰邪)와 오장을 모두 깨끗하게 씻겨 주니, 혈기가 조화를 이루어 평온해져서 백발의 늙은이가 이에 즐거움이 있다"라고도 하였습니다. 건강도 챙길 수 있으면서 민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팥죽이었던 것입니다.

 

   건강식으로도 손색없는 팥죽이지만, 원래 팥은 그 색깔로 인해서 축귀(逐鬼)의 민속적인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역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평소 팥죽을 싫어했기 때문에 역신을 쫓기 위해 팥죽을 쑤어서 악귀를 쫓아낸 것입니다. 사람이 죽은 상갓집에 팥죽을 보내거나 팥죽을 그릇에 담아서 각 방과 부엌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다같이 모여서 먹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이처럼 팥의 붉은 색깔은 양을 의미해서 음귀(陰鬼)를 쫓는 축사(逐邪)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중요한 의식 중에 하나는 팥죽을 대문의 문짝에 바르는 것입니다. 이는 재앙을 없애고자 하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조선의 임상진료서인 ≪의림촬요≫에도 보면, 종기가 나거나 부어오르는 종통(腫痛)이 생기면 뽕나무 가지를 끓인 물에 팥을 넣기도 합니다. 또한 온갖 역병과 벌레를 물리치기 위해서 정월이 되기 전에 팥죽을 끓여서 먹으면 병을 물리친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팥은 민속적·주술적 기능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앞으로의 소원이 있다면 옛날에 민간에서 팥으로 사악함을 물리치려 했던 것처럼 이 사회에서도 삿된 원흉들이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팥이 기능을 했으면 합니다. 팥을 뿌려서 잡귀를 내쫓는 것처럼 다시는 이 사회에 적폐라는 단어가 발을 들일 수 없도록 팥에게 새로운 기능을 부탁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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