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양한문

춘야독작(1)-이백을 떠올리며(春日憶李白)

by !)$@@!$ 2022. 11. 3.
반응형

■봄, 이백을 떠올리다

   바람에도 향기가 느껴지는 계절이다. 햇살을 머금은 벚꽃들이 찬연한 자태를 뽐내며 봄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다. 봄의 전령사 노릇을 하는 벚꽃을 예전에는 앵화(櫻花)라고도 하였는데, 지금과 같이 보고 즐기는 대상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의 벚꽃은 완상의 대상이 아니라, 배꽃과 살구나무꽃이 핀 마을 너머에서 불어오는 '이화풍(梨花風)'과 '행화풍(杏花風)'이 문인들의 시흥을 돋우는 역할을 대신하였다.

 

   이백(李白)이 복사꽃, 오얏꽃이 흩날리는 정원에서 형제들과 술자리를 벌이던 때도 지금과 별반 다르진 않았으리라[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梨園書)] . 공자도 ≪논어≫에서 "술은 일정한 양은 없었지만, 취함에 절도가 있었다(酒無量, 不及亂)"고 하셨고, 또 "말 안 할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은 말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말할 사람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를 "술을 권하지 않을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술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술을 권할 사람에게 권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라고 바꾼다면 오늘 같은 날은 공자도 그 선(?)을 넘지 않으셨을까?

 

봄밤

 

■봄밤, 술을 부르다

   예와 지금의 분위기는 다를지라도 봄이 주는 흥취는 여전하다. 봄기운이 흥하니 주객의 취흥도 발동한다. 그 옛날 주객들의 마음도 지금과 같았으리라. 불러주는 친구 없고 마셔야 할 구실은 없어도 봄이 주는 정취 하나로도 이유는 충분하다. 주종(酒種)이 뭐가 중요하며 안주가 뭔 필요 있으랴. 주객은 자고로 원근불사, 청탁불사, 안주불사라 했다. 술이 부르는데 가깝고 먼 것이 뭐 그리 중요하며, 청주든 탁주든 가리지 않으며 술만 있다면 안주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오늘은 '청성탁현(淸聖濁賢)'의 고사처럼 성인-청주-을 만나든, 현인-탁주-을 만나든 단지 조조(曹操)의 금주령이 고맙기만 하다. 주객을 술을 차별하지 않으므로 술 또한 주객을 차별하지 않는다. 반상(班常), 빈부(貧富), 장유(長幼), 남녀(男女) 등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신령스러운 물건이다. 그렇기에 비록 빈천할지라도 술의 법도를 지키는 자라면 함께 할 수 있으며 부귀한 자일지라도 법도를 지키지 않으면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봄기운이 승한 춘야(春夜)에 굳이 주우(酒友)가 필요하랴. 달과 그림자만으로도 충분히 족하다[월하독작(月下獨酌). "꽃 그늘 아래에서 한 병의 술을, 친한 이도 하나 없이 홀로 마시네. 술잔 들어 밝은 달을 마중하노니, 나와 달과 그림자가 세 사람을 만들었네(花開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혼자 마시는 소박한 자리라도 얼마든지 취흥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서 마시는 술을 소작(素酌)이라고도 한다. 둘이 마시면 화작(化酌), 셋은 한작(閑酌), 넷은 안작(安酌), 다섯은 수작(秀酌)이라고 한다. 이어서 전작(全酌), 등작(登酌), 임작(臨酌), 연작(宴酌) 등 아홉 명까지 더불어 먹는 술에 모두 그 이름이 있다. 혼자 마시는 소박한 자리부터 아홉 명이 함께 하는 잔치 자리까지 인원수에도 각각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작인(酌人)이 여럿일수록 취흥은 높아지겠지만 혼자서 따르는 술이라 하여 취흥이나 풍취가 결코 덜하진 않다.

반응형

'교양한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맹호연, <유별왕시어유>  (0) 2022.11.03
정지상, <송인>  (0) 2022.11.03
두보, <여야서회>  (0) 2022.11.03
백거이, <부득고원초송별>  (0) 2022.11.02
김시습, <유객>  (0) 2022.11.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