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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인성

자신을 탓하는 지혜

by !)$@@!$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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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원인을 나로부터 찾는 반성의 자세가 필요

 

  고려 말 문신 이달충(?-1385)의 <애오잠병서>는 '칭찬하고[愛] 비난하는[惡] 것에 대하여' 잠언[箴]의 형식을 빌어서 쓴 글입니다. 이 글은 가상의 유비자(有非子)와 무시옹(無是翁)이라는 두 인물을 내세워 타인의 평가나 비난에 대한 대처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비자는 무시옹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물었고, 무시옹은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고 여기거나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못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기뻐할 일이라고 대답합니다.

 

  반대로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여기거나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고 한다면 이 또한 두려워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남이 나에 대해서 내리는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평가를 내리는 사람이 과연 사람다운 사람인가 사람답지 않은 사람인가가 중요하다는 취지의 말입니다.

 

  세상은 남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소리들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각자가 물색한 제물(?)들을 대상으로 자신만의 주관적 기준과 잣대를 들이댑니다. 마치 누군가를 깎아내려야 내가 높아진다는 우월의식이라도 생긴다고 착각하는 모양입니다. 자존심이 센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자존심이 세다는 것은 자존감이 낮다는 말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이들은 남의 평가에 민감하여 조그만 비난에도 쉽게 화를 냅니다. 남의 눈치를 보면서 주변의 상황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하고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추앙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이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간접적인 방증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칭찬에는 인색하고 비난하는 평가들만 무성합니다. 이러한 말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고 여기면서도 현실은 머리보다 감정이 앞서게 되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나를 평가하고 바라보는 시선들보다 자신을 돌이켜보는 반성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씨춘추≫에 보면 "다른 사람을 이기려면 반드시 먼저 자신을 이겨야 하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려면 반드시 먼저 자신을 평가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알려면 반드시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故欲勝人者, 必先自勝, 欲論人者, 必先自論, 欲知人者, 必先自知.)"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달충의 글 말미에 있는 잠언(箴言)과도 상통합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박세당(1629-1703)도 ≪효애오잠(效愛惡箴)≫에서 "사람들에게는 좋고 싫은 것이 있어서 서로 시비(是非)를 다투는데, 내가 거기에 휩쓸려 한편으로는 근심하고 한편으로는 기뻐한다면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결국 자신에게 달려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좀 더 자신을 반성하고 가다듬는 수신(修身)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수신의 시작은 자신에게서 말미암아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것입니다. 공자는 잘못을 자신에게서부터 찾는 것을 군자지도(君子之道)라고 하였습니다. 남만 탓하고 원망하는 것은 소인배들이나 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맹자도 자신의 몸이 바르면 천하가 돌아오게 되니, 자신에게서 잘못의 원인을 찾아야한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면 오히려 기뻐하는[聞過則喜] 열린 미덕이 필요한 것입니다. 남을 탓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자 하는 '반궁자성(反躬自省)'의 공맹정신(孔孟精神)이 필요합니다.

 

  1990년대 초반에 김수환 추기경이 자동차 뒷유리에 붙인 '내 탓이오'라는 작은 스티커 한 장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사회 각계각층의 영역에서 '내 탓 운동'을 벌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네 탓'이라고 원망하고 타박할 게 아니라 '내 탓'으로 돌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겁쟁이' 예찬론자였습니다. 인간이 모두 용감하면 서로 싸우며 혼란스럽게 되지만, 겁쟁이면 서로가 편안한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남의 잘잘못에 초연하여 자신을 먼저 탓하는 겁쟁이가 된다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리라고 확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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