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씨앗으로 우정의 결실을 맺는 정신적 벗

친구, 신뢰의 씨앗으로 우정의 결실을 맺는 정신적 벗

 

  초나라에 사는 어떤 사람이 자기의 코 끝에 파리 크기 정도의 아주 작은 석회 덩어리를 바르고, 석수장이 친구에게 도끼로 그것을 깎아내도록 하였습니다. 석수장이는 재빠르게 도끼를 휘둘러 석회 덩어리를 깎아냈지만, 그 사람은 전혀 겁내거나 동요하지 않았고 상처도 없었습니다. 송나라 임금이 이 이야기를 듣고 석수장이를 불러 시범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석수장이는 지금은 그 친구가 죽어서 시범을 보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장자≫, <잡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장자가 벗인 혜자의 묘 옆을 지나면서 말한 일화입니다.

 

  보통 최고의 경지를 지닌 빼어난 기술자를 비유할 때 사용하는 '운근성풍(運斤成風)'의 고사로도 쓰이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신뢰가 쌓인 진정한 벗과의 믿음을 이야기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장자 자신도 석수장이처럼 친한 벗을 잃어서 지금은 더불어 말할 상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백아와 종자기, 관중과 포숙아의 관계에 버금가는 믿음이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친구

 친구의 의미

 

예부터 친구의 의미는 다양하게 정의되어 왔는데, 현대 우리는 흔히 사람 사이에 교류가 형성된 동년배를 친구라고 합니다. '오랫동안[舊] 친한[親] 사이'로 많은 시간을 공유했기에 친구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옷은 새 것이 좋고, 사람은 오랠수록 좋다(衣, 莫若新, 人, 莫若舊)'라는 말도 오랜 시간을 함께 공유한 친구가 더욱 좋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물리적 시간의 다소(多少)만으로 친구 간에 우정이 쌓이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난 시간만으로 신뢰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 시간의 축적보다 정신적 신의가 축적되는 관계라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친구는 다른 말로 벗을 의미하는 붕우(朋友)라고도 합니다.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 양웅은 "벗으로서 마음을 나누지 않으면 얼굴만 아는 벗이고, 친구로서 마음을 나누지 못하면 얼굴만 아는 친구이다(朋而不心，面朋也, 友而不心，面友也.)"라고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붕(朋)'과 '우(友)'의 의미를 세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붕은 나이와 상관없이 뜻[志]을 함께 하는 사이라면, 우는 비슷한 나이로써 정(情)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성격이 강합니다. 지(志)가 정(情)보다 정신적으로 높은 개념이라 하더라도, 붕우는 시간만 공유한 친구의 의미보다는 훨씬 신뢰가 형성된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벗을 제2의 나[第二吾], 기운이 다른 형제[匪氣之弟],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 아내[匪室之妻] 등으로도 불렀습니다. 굳이 부연 설명이 없어도 벗의 의미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지금은 친구의 의미가 많이 가벼워져서 우정에 대한 체감온도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속도와 우열 경쟁에만 치중하다 보니,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변질되면서 그 무게감은 퇴색되고 만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말 한마디에 서운해하고 등을 돌리고 맙니다. 마음으로 사귀지 않으니, 겉으로만 친한 척하는 가짜 친구만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 뜻과 정을 나눌 수 있는 벗이 없으니 앞에서만 아는 척하거나 술만 함께 마시는 친구만 가득합니다. 얼굴 많이 마주한다고, 술잔 많이 기울인다고 벗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벗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인디언 속담에는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를 벗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벗은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전제로 신뢰의 씨앗을 뿌려서 우정이라는 결실을 맺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두 손처럼, 새의 두 날개처럼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벗 우(友)'가 왼손과 오른손을 맞잡아 교차하는 것처럼,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친구입니다.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보다 한 사람의 진실한 벗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저 그렇게 시간만 공유한 친구인지, 정신적 신뢰를 형성한 벗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저도 당연히 친구보다는 벗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