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대한 세종의 사랑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임금으로 조선시대 세종대왕을 꼽는 것에는 거의 이의가 없을 듯합니다. 세종은 지금까지도 우리가 가장 존경하고 추앙하는 성군(聖君)으로 국민들 가슴 속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장애인의 날과 스승의 날에서 '세종대왕'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뽑아낸다고 하면 더욱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수직적 신분제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남다른 정책을 펼친 것과 많은 위인 중에 세종의 생일을 스승의 날로 정해 학생들의 사표(師表)가 되라는 것은 그에 대한 우리 국민의 남다른 애정도가 담겨 있습니다. 세종이 아직까지 국민에게 존숭을 받는 주된 이유가 훈민정음의 업적뿐만이 아니라 백성을 사랑한 애민정신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종 13년(1321)에 박연은 임금 앞에 나아가 아뢰기를,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들이게 거문고 타는 임무를 맡겼으니, 이는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장애인 관련 문제를 세종에게 건의하였습니다. 또 세종 14년에는 "관현악은 소경으로서 나이가 어린 자를 선택하여 벼슬을 주고, 소경병에 걸린 자들에게도 검직을 주게 해주십시오"라고 상언(上言)하니, 세종은 모든 장애인들에게 벼슬을 제수하였습니다. 세종이 보여준 인재의 조건이 장애나 신분에 상관없이 오직 능력에 따라서만 관직에 채용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애인들과 그 가족에게는 부역과 잡역을 면제해주고, 장애인을 잘 보살핀 가족에게는 특별히 표창을 해서 부양을 독려하기도 하였습니다. 600년 전 실시한 장애인 제도가 지금도 신선할 정도의 애민사상이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18세기 실학자 홍대용도 ≪담헌서≫에서 "소경은 점치도록 하고, 벙어리와 귀머거리, 앉은뱅이까지 모두 일자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 없는 복지정책은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반면 고대 서양에서는 장애인들은 신에게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조차도 장애인들에게 모진 박해와 핍박을 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조선은 만민에게 평등한 복지정책을 펴서 그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한 것입니다. 척추장애인 허조는 조선 초에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청백리였으며, 간질을 앓은 권균은 우의정까지 올랐습니다. 지체장애인 심희수는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냈고, 영조는 청각장애인 이덕수를 외교특사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일각정승(一脚政丞) 윤지완은 한쪽다리로 임금 앞에 서는 것은 불충이라며 사직서를 냈지만, 숙종은 이를 물리치기도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점복사, 독경사, 악공과 같은 전문적인 일자리가 창출되어 조선의 장애인들은 차별보다는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으며, 조선사회 깊숙이 자리잡아갔습니다.
■장애인, 차별 없이 함께 사는 우리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다같이 더불어 사는 사회임을 강조하며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득보장과 노등권 등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는 합니다. 하지만 기대감과는 다르게 장애인들에 대한 처우와 현실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입니다. 예전에 대선후보 토론회를 보면 사회자까지 모두 6명이 진행하는 토론에 한 명의 수화통역사만 정신없이 통역을 하면서 자막도 없는 화면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이 화면을 보고 청각장애인들이 얼마나 후보들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잘 전달됐을지는 아직까지 의문입니다. 반면에 미국 대선토론회에서는 사회자까지 3명의 토론회에 각각의 수화통역사가 자막방송까지 내보내서 많은 화제와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장애인들에게는 정책만 쏟아내는 비전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필요한 조그만 배려와 실천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대통령 후보들 중에서도 닮고 싶은 인물로 세종을 언급한 후보들이 있습니다. 세종의 폭넓은 애민사상과 소통하는 리더십을 닮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말로써 표를 얻기 위한 정치성 공약이 아니라, 행동이 말을 따라갈 줄 아는 책임의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세종대왕까지 거론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으니, 세종을 욕되지(?) 않게 하려는 위정자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장애인은 몸이나 마음에 결함이 있어서 일상생활에 조금 불편을 겪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장애만 가지고 그들을 차별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속 장애를 안고 있는 다수의 우리가 그들에게 부리는 횡포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그들을 장애인(障礙人)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오랫동안 공생해 나가야 할 장애인(長愛人)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시사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 금연의 날 (0) | 2023.04.03 |
---|---|
부부의 날 (0) | 2023.04.03 |
한식(寒食)의 의미를 되살리자 (0) | 2023.04.03 |
삼(三), 현대사회에 필요한 균형감각 (0) | 2023.03.03 |
배움, 인생의 끝없는 여행 (0) | 2023.02.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