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담배
1616년 광해군 때, ‘남쪽에서 들여온 신령스러운 풀’은 조선에 빠르게 정착하여 뿌리를 내립니다. 남령초(南靈草)로 불리는 이 풀은 들어온 지 5년도 안된 사이에 일파만파로 조선 팔도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풀을 태워 연기를 흡입하면 아프던 몸도 개운하게 만들어서 하얀 연기는 17세기 조선 의학의 구세주가 된 것입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이것’은 일본에서 생산되는 풀로, 가래침이 목구멍에 붙어서 뱉어도 나오지 않을 때, 구역질이 나면서 침이 뒤끓을 때, 소화가 안 될 때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가슴이 조이면서 신물이 올라올 때나 한겨울에 추위를 막는 데도 유익하다며 만병통치의 신약(神藥)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4대 문장가인 장유는 “구절초처럼 향기가 풍겨서 한 번만 써보면 신약인 줄 당장 알 것”이라고 극찬하였고, 다산 정약용의 시에서도 “가만히 빨아들이면 향기가 물씬하고, 슬그머니 내뿜으면 실이 되어 간들간들”해서 귀양살이하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이라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여기서 소개된 이것의 정체는 바로 ‘담배’입니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호랑이는 적어도 17세기 초부터 등장한 호랑이였던 것입니다. 당시 조선 팔도의 모든 백성들은 남녀노소와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하얀 연기에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했습니다. 국왕 정조도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남령초만한 것이 없으니, 그 효과를 확산시켜서 담배를 베풀어준 천지의 마음에 보답해야 한다고 국령(國令)으로 선포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담배의 이로움 못지않게 해악에 대한 반대 여론도 뜨거웠습니다. 1638년 인조에게 올린 글에서는 담배가 간의 기운을 손상시켜 눈을 어둡게 하고, 오래 피우던 자가 유해무익함을 알아도 끊을 수 없는 요망한 풀[妖草]이라고 하였습니다. 성호 이익도 담배의 이로움을 말하면서도 정작 정신을 해치고, 머리를 희게 하며, 이와 살이 빠져서 사람을 더욱 늙게 만드는 등 부작용이 더욱 많다고 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남녀노소의 흡연이 유교문화와 충돌하면서 어린아이가 어른과 맞담배를 하고 여성의 흡연이 미풍양속에 저해된다고 판단해서 조선 후기로 갈수록 담배 문화는 여론에 밀려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담배, 비가치재의 무가치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담배의 이해(利害) 논리는 아직도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조선 시대의 담배가 예절 문화의 풍속과 충돌한 반면, 몇 년 전에는 여야가 서민의 기호품인 담배를 정쟁(政爭)의 도구로 삼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집권할 당시에는 국민 건강 운운하면서 담뱃값 인상의 명목을 달더니, 처지가 바뀐 다음에는 과도한 서민증세라며 피켓을 바꿔 들고 국민을 호도하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다가 궐련형 전자담배의 증세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담배로 인한 공방이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편할 날 없는 담배의 운명을 바라보는 애연가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담배는 소비자에게 손실을 주고 부정적인 효과만 낳아서 정부가 규제하는 비가치재입니다. 담배 외에도 술과 마약, 성매매 등 사회적 가치를 손상하는 것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비가치재가 정략적 가치재로 둔갑하여 여의도 국회에서는 ‘제 논에 물대기’를 하려고 안달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민 감세를 운운하며 정치적 논리로 들이대는 이러한 무리들이 더욱 유해하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유해한 비가치재마저도 위정자들에게는 정략적 가치로 이용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위정자들은 국민들의 호주머니까지 정치논리로 끌어들이려 한다면 어리석은 오착(誤錯)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들의 얄팍한 사술(詐術)에 놀아날 국민들은 없을 것이니, 부디 멀리 보는 정안(正眼)으로 정부에 힘을 보태는 국회의 가치재들이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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