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三)'의 중요성
솥은 삼국시대부터 부엌살림의 가장 중요한 그릇 중 하나였습니다. 크기와 용도는 다양하지만, 보통 다리가 있으면 부(釜)라 하고 없으면 정(鼎)이라 합니다. 이 중에서 정은 다리가 셋이고 귀가 둘인 모양으로, 음식을 익히고 조리하는데 사용합니다. 하나라 우왕은 전국을 아홉 개의 주로 나누면서 각 중에서 거두어들인 쇠로 구정(九鼎)이란 청동솥을 주조하였는데, 이 솥이 상나라와 주나라에까지 계승되면서 후대에는 솥이 왕실을 상징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솥은 조그만한 쇠붙이들을 수없이 녹여서 만들어야 하는 고된 작업이므로, 삼족정(三足鼎)은 최하 말직부터 순서대로 올라가 재상의 지위에 올랐다는 의미로도 쓰이게 되었습니다. 솥 안에 있는 국의 간을 맞춘다는 뜻의 조정(調鼎)이 재상의 국정 수행을 비유한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최인호의 장편소설 <상도(商道)>에서는 석숭스님이 임상옥에게 '솥 정' 자의 비의(秘義)를 내려주었는데, 추사 김정희는 그 뜻을 물어온 임상옥에게 '재물, 권력, 명예' 세 개로 풀이해 주었습니다. 이는 서로 안정과 균형을 이루면서 삼족정립(三足鼎立)을 해야만 재앙을 면할 수 있음을 경계한 말입니다. ≪주역≫, <정괘>에 '솥의 발이 부러져서 담긴 음식을 엎지르다'라는 뜻의 절족복속(折足覆餗)도 솥의 발이 안에 담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리가 부러진 것을 뜻합니다. 셋 중에서 하나가 부러지니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연유하여 지식이 얕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깜냥보다 버거운 직책에 앉게 되면 일을 감당하지 못해 그르치고 만다는 뜻으로 종종 사용하기도 합니다.
■'삼(三)'은 균형이다
짝수인 음수를 좋아하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는 홀수인 양수를 좋아하고, 이러한 음양은 사람에게도 곧잘 비유하곤 합니다. 일설에는 일(一)을 남자인 양, 이(二)를 여자인 음으로 해석하여 남녀가 결합한 '삼(三)'을 생명의 탄생으로 해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삼을 길수(吉數) 또는 신성수(神聖數)로 여겨서 최상이나 창조, 완전함을 의미하는 완벽한 숫자로 여기는 이유입니다. 이렇듯 삼은 단군신화의 천부삼인(天符三印)부터 삼세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가위바위보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뇌리에 집단적 무의식으로까지 자리잡으면서 삶의 균형감을 주는 숫자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삼은 균형감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 개의 완전체라야 서로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비로소 안정된 균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위태롭고 두 개는 기울어지기 쉽습니다.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서 불안하고 위태로워 넘어지기 마련인데, 이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와 똑 닮았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경도되어 나타나는 편향된 주장들,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경박한 몸짓들은 우리의 슬픈 자화상들입니다. 모두 사고와 언행의 불균형이 만들어낸 결과들입니다.
균형을 유지해야 안정이 되고 안정이 돼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중용적(中庸的) 태도를 견지하면서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좀더 매력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끄는 '삼삼한'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시사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애인의 날 (0) | 2023.04.03 |
---|---|
한식(寒食)의 의미를 되살리자 (0) | 2023.04.03 |
배움, 인생의 끝없는 여행 (0) | 2023.02.27 |
배움, 평생의 업(業) (1) | 2023.02.01 |
새해, 벽(癖)에 미친 사람이 되자 (0) | 2023.01.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