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과 한식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만개한 사월입니다. 거리를 수놓은 벚꽃 사이로 바람에 묻어나는 향기와 함께 봄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벚꽃을 예전에는 앵화(櫻花)라고 불렀는데, 당시는 보고 즐기는 완상(玩賞)의 대상은 아니었고, 옛 시인들은 봄의 전령사로 배꽃과 살구나무꽃을 의미하는 '이화풍(梨花風)'이나 '행화풍(杏花風)'을 대신하였습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에는 청명(淸明)과 한식(寒食)이 있습니다. 보통 청명과 한식이 같거나 하루 차이라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란 속담은 '별 차이가 없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지금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엄연히 말하면 청명은 24절기 중 하나이고, 한식은 4대 명절에 해당하여 출신 성분(?)이 다르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청명과 한식은 불과 관련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겨울에 홰나무로 불을 지피다가 청명이 되면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로 새 불을 일으켰기에 이 불을 '청명화(淸明火)'라고 합니다. 봄에 새롭게 피운 불은 양기를 띠고 있어서 임금이 전국의 관리들에게 사화(賜火)하고, 관리들은 다시 백성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한식은 '성묘하다'라는 의미의 '상총(上冢)', 음식을 익혔다가 차갑게 먹기 때문에 '숙식(熟食)'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데, 여기에는 충신인 개자추(介子推)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개자추 이야기
중국에는 예부터 '남유굴평, 북유개자(南有屈平, 北有介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충신 굴원과 개자추를 기리는 말입니다. ≪좌전≫에 의하면 개자추는 춘추전국시대 진 문공(晉文公)이 19년 동안의 망명 생활을 할 때 허벅지 살까지 도려내주는 '할육구주(割肉救主)'의 정신으로 곁을 지켜준 충신이었습니다. 후일 문공이 왕위에 올라 신하들에게 논공행상을 하면서 개자추의 은혜는 잊어버리자 그는 어머니와 함께 면산(綿山)으로 들어갑니다.
면산은 마치 인간계와 신선계가 공존하는 선인교유(仙人交遊)의 절경을 보여주는 듯해서 지금도 '천상의 공중도시', '중국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리는 험산(險山)입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문공은 산에 불을 놓으면 효성이 지극한 개자추가 하산할 것이라 믿고 불을 질렀지만 개자추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자추는 면산의 제일 꼭대기 나무 밑에서 어머니를 껴안은 채 불에 타 죽고 만 것입니다. 문공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나라에 '금거화(禁擧火)'의 법령을 공표하여 개자추의 혼을 위로하였는데, 이 날이 바로 한식입니다.
■한식, 우리의 전통문화
한식이 되면 안산에 사는 고려인들은 십시일반으로 합동 차례상을 마련한다고 합니다. 한식을 고려인들이 챙긴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하겠지만, 연해주와 중앙아시아를 떠돌면서 타향살이를 한 그들의 설움을 알고 있다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입니다. 이들은 고향에 돌아가서도 한식을 '부모님의 날', '조상의 날' 등으로 부르며 우리의 명절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한인의 정체성과 명절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대단하기도 합니다. 1937년 카자흐스탄에 강제로 정착하여 80여 년째 살고 있는 고려인들은 지금도 한식이 되면 온 가족이 고기와 생선, 과일 등으로 풍성하게 음식을 준비해 공동묘지인 '북망산'으로 성묘를 간다고 합니다. 먼 타국에서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우리 전통문화의 원형을 지켜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려인들의 정신과는 달리 우리가 한식을 대하는 마음은 심히 부끄러워집니다. ≪동국세시기≫에서는 한식을 설,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의 4대 명절이라 하여 차례를 지내고 산소를 돌봐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날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식 때가 되면 단지 나무 심기 좋은 날, 나들이하기 좋은 날 정도로만 기억하며 한식의 의미가 점점 식어가고 있습니다. 전통은 전통으로서 꾸준히 지켜나갈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식도 조상들 생활 속 삶과 주제로 함께 했던 명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부터라도 그 전통을 확실하게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든 전통을 옛 방식 그대로 고수(固守)하자는 뜻이 아니라, 옛것을 거울삼아 그 근본을 지켜서 새로운 전통으로 이어나가는 방법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단 옛것과 전통에 대한 마음가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공자의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더욱 간절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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