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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말의 무서움을 아는 정치인이 돼야

by !)$@@!$ 2022.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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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과 설화(舌禍)가 난무하는 요즘의 현실을 통탄하며,

 

  1432년 5월, 세종은 대신들과 한자리에 모여 참위설을 주제로 경연에 한창입니다. 참위설은 중국 한나라 때 유행한 '미래예언설'을 말합니다. 세종은 "지진은 천재지변 중에 큰 것이니, 우리나라에는 지진이 없는 해가 없었고, 특히 경상도에 많았다. 지진이 하삼도(下三道)에 많으니 오랑캐의 변란이 있지는 않을까 의심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승지 권채가 답하기를, "반드시 어느 일을 잘하였으니 어느 좋은 징조가 감응(感應)하고, 어느 일을 잘못하였으니 어떤 좋지 못한 징조가 감응한다고 하는 것은 억지로 갖다 붙인 사리에 맞지 않는 언론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세종은 "경의 말이 옳으니 천재지이설(天災地異說)을 억지로 채택하지 않겠다."라고 답하였습니다. 이때 천재지이설은 천지이변이 인간사회의 길흉을 예언한다는 이론에 빠져서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종 당시 지진에 대한 기록 중 하나입니다.

 

 

  예부터 지진은 ≪삼국사기≫에 100여 건, ≪고려사≫에 190여 건, ≪조선왕조실록≫에 약 2000여 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진은 전국 팔도에서 골고루 발생했지만, 유독 경상도에서 발생한 지진이 ≪조선왕조실록≫에만 673건 정도가 보입니다. 당시 기록에도 전조 현상의 햇무리가 보이고, 땅이 갈라지며 해일을 동반한 지진들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재난의 징조가 보이면 옛사람들의 대처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천앙(天殃)에 맞서지 않고, 오직 순리를 따랐던 것입니다. 그 방법의 하나라 나라에 이변(異變)이나 기상의 천변(天變)이 일어나면 해괴제(解怪祭)라는 제사를 지내고는 했습니다. 나라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이 모두 신들의 노함으로 인해서 발생했다고 보고 올리는 제사입니다.

 

  최근에도 전세계적으로 예측과 다른 기상이변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에 예전처럼 제(祭)를 지내서 될 일도 아니지만, 현대라고 딱히 재난을 막을 방법도 마땅치가 않습니다. 재해를 미연에 잘 방지할 수 있는 현명한 대처법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이렇게 불안감에 빠져서 어수선한데, 이 틈을 타서 재난을 교묘하게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적 천재(?)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재앙을 자신의 정치적 도구로 재해석하여 존재감을 알리려는 행위는 천재(天災)보다 더 위험한 언재(言災)에 해당합니다. 이 정도면 과히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고 할 만합니다.

 

  정치라는 것이 견제와 대립을 기본으로 하여 존재하는 생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똑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는 여야의 극과 극 대립으로 갈라지는 해석이 비일비재하기에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당리적·정략적으로 접근하는 아전인수격의 주장은 이제 국민들도 애교 수준으로 봐 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도 안되는 것들을 억지 춘향으로 갖다 붙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들의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막말잔치'에 국민들은 이제 넌더리가 납니다.

 

정치인

 

  아무렇지도 않게 극단적인 망언을 쏟아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안이한 태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들의 막말을 기록으로 남겨 사회적으로라도 처벌, 퇴출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지경입니다. 국민들이 달아준 배지의 무게보다 말의 무게가 더욱 크다는 것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누구라도 왜곡된 말을 하면 하늘의 벌을 받는다는 '곡필천주(曲筆天誅)'를 주지해야 할 것입니다. 말이 불러오는 재앙은 하늘의 노여움보다도 크다는 것을 다같이 명심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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