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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조선의 영원한 아웃사이더, 백정(白丁)

by !)$@@!$ 202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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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영원한 아싸

   인도의 세습적 계급 제도를 카스트라고 합니다. 이 제도는 4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최하층인 수드라(Shudra)는 하인이나 청소부들이 이 계층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수드라 계층에도 들지 못하는 가장 최하층이 불가촉천민들입니다. 몸에 닿기만 해도 더럽혀진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선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조선에서도 시대의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덟 천민들의 계층이 있었는데, 이들을 팔천(八賤)이라고 묶어서 말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노비, 광대, 기생, 백정,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 등의 신분을 말하며, 당대 최하층으로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 되었던 신분들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아싸인 것입니다.

 

   이 중에서 천민 중에 천민의 신분이 바로 백정(白丁)이었습니다. 조선의 백정은 고려의 백정과 구분하기 위해서 신백정(新白丁)’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들은 재인(才人, 광대)과 화척(禾尺, 버드나무 세공이나 소 잡는 업)을 통칭한 명칭입니다. 조선의 백정은 거란인·말갈인들이 들어오면서 양수척(楊水尺, 도살업), 화척을 거쳐 백정으로 개칭된 것입니다.

 

   고려시대 전쟁에서 끌려온 여진족·거란족 포로나 귀화인들이며 유목민의 후예라서 가축 손질에 능했습니다. 이들은 조선에 정착해서도 유목민들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고, 수렵과 목축, 유랑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생활이 어려워지면 민가를 습격해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고 방화와 살인을 일삼기도 했습니다. 결국 백정의 폐단으로 인해 나라의 단속이 강화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백정(출처-EBS역사채널)

 

   조선은 양천제(양민과 천민)로 구분된 사회였지만, 양반과 중인, 평민과 천민의 네 계급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민은 노비만 해당되었지만, 백정은 노비보다도 더 심한 모욕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결혼해서 가마도, 죽어서 상여도 탈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아이 앞에서도 연신 조아리면서 머리를 숙여야 했고, 금기를 어기면 마치 짐승처럼 매를 맞으며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조선에 정착은 했지만 방랑자, 이방인의 모습으로 무시와 천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무차별한 도살로 인해 제도권의 신분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었던 영원한 아싸인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선 후기에 의적 임꺽정도 백정의 신분이라서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무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야 했던 백정들이지만, 그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육식을 좋아하는 양반들이었던 것이죠. 조선은 동물을 제물로도 바치던 사회였기 때문에 육식 문화에 대한 거부감도 적었고, 지도층의 육식 사랑이 심해지면서 태조는 우금령(牛禁令)’을 내렸고, 세종은 금살도감(禁殺都監)’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집안의 가축보다도 더욱 극심한 멸시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허락 없이 도축을 하면 장형 100, 유형 3천 리, 몸에 먹물을 새기는 경형(黥刑) 등의 형벌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면전에서는 철저하게 무시하면서도 자신들의 식욕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백성의 손길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불합리한 신분 제도가 해방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에 이르러서입니다. 제도상·신분상의 평등권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차별 철폐는 아직도 지난한 과제였습니다. 그러다가 1923년 백정 이학찬은 <백정도 사람이다>라는 형평운동 발기문을 통해서 신분 해방운동을 펼쳐나갔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면 종일토록 통곡하여도 혈루(血淚, 피눈물)를 금할 깃이 없다. 여기에 지위와 조건 문제 등을 제기할 여유도 없이 일전의 압박을 절규하는 것이 오등(吾等, 우리들)이 실정이다. 이 문제를 선결하는 것이 아() 등의 급무(急務, 급한 일)라고 설정하는 것은 적확한 것이다. ()하고 빈()하고 천()하고 굴()한 자는 누구였던가?”

-<백정도 사람이다> 발기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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