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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인성

예(禮), 사람다움의 실천

by !)$@@!$ 202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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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하는 인간관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답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것이 지니는 성질이나 특징, 긍정적인 속성이 있다'는 뜻을 더해 주는 이 말은 보통 사람이 자신의 소임을 다해서 칭찬하거나 인정해 주는 상황에서 사용합니다. 자신의 일이나 책임을 충실하게 해낼 때 사람다움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천 년 전에 공자도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君君臣臣, 父父子子)이 모두 그 '다움'을 주장하며 각자의 직분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진 집단입니다. '사람 인(人)' 자의 자형(字形)을 보더라도 작대기가 서로를 받쳐주고 의지하며 서 있는 것처럼 인간도 타인과 소통하면서 서로 부둥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김광규 시인이 <나>에서 말한 것처럼 '오직 하나뿐인 나'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망 속에서 형성된 다양한 존재가 나인 것입니다. 서로가 관계를 맺고 살다 보니 이 속에서 질서와 규율이 생겨나게 된 것이며, 공동체[社會]의 안녕을 위해서 남을 위하는 배려의 정신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배려는 인간관계의 전제이며, 배려의 마음을 갖는 것이 예(禮)가 추구하는 기본 정신인 것입니다. 예를 지키고 실천한다는 것은 '사람다움'을 지키고 실천한다는 의미와 상통합니다. 시쳇말로 사람 인 다섯 개가 모인 단어(人人人人人)의 의미가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지 사람이지'로 풀이되는데, 여기에는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 사는 사람다움의 원리가 숨이 있는 것입니다.

 

■예의 실천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1548-1631)은 예를 '상대방에 대한 정성'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의칙(儀則)'이라고 명시하고는 있지만, 인간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기에 그 범위가 매우 포괄적입니다. 예는 자원(字源)이 '보일 시(示)'와 '풍성할 풍(豊)' 자가 합해진 글자입니다. 시(示)는 제사를 의미하므로, 신전에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 정성을 다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글자로 풀이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는 경건하게 신을 모시듯이 상대방에게 존경의 뜻을 담아 정성을 표현하는 몸가짐입니다.

 

   예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하더라도 예를 행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시대가 변해가면서 예의 의미와 기준도 많이 달라졌지만, 상대방을 대하는 기본 정신만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예로 대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정성껏 표출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남과 더불어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하여 그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기≫의 말처럼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니, 미천한 사람이라 해도 반드시 존중"해야 하는 것이 예의 기본입니다. 예는 상대방의 지위 고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등등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에티켓

 

■'예티켓너'가 되자

   현대에서 원하는 예는 자신의 이목구비를 모두 닫아가면서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는 공자의 말씀을 따르자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과 상식으로서의 예만 지켜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예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사람다움의 기본이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혼자의 생활을 즐기는 1인 생활족(族)이 점차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밥 먹고(혼밥), 혼자 술 마시며(혼술), 혼자 영화 보는(혼영) 새로운 '종족'들이 등장하면서 예를 실천할 기회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혼자서 편하게 밥을 먹는 식당이 생겨나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생활백서까지 출판하는 친절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이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아서 편하다"라고 말합니다.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살아가야 하는 대상을 이젠 '귀차니즘'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현상들이 서로 의지하고 배려하는 사람다움에 가까운 일들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예의 기준을 예의범절이라는 고전적 매뉴얼로 정의하면서 봉건 논리와 수구 논리에 얽매인 고리타분한 것으로만 치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예는 사람다움의 기본이면 됩니다. '매너'와 '에티켓'이 요구되는 사회라면, 상대를 존중하는 매너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에티켓이면 현대를 살아가는데 충분합니다. 이제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예와 에티켓과 매너를 합성한 '예티켓너'가 되어 사람다움의 기본을 지키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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