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책 거간꾼, 책쾌
조선후기 조생(曹生)이라는 인물은 항상 소매에 많은 책을 넣고 다녔으며, 붉은 수염에 빛이 나는 눈빛으로 우스갯소리도 잘하였습니다. 그의 직업은 한양에서 책을 파는 중간 상인으로, 당시 ‘책벌레’들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조생을 통하면 희귀본이나 금서를 비롯하여 원하는 책 모두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책을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자부심과 책을 보는 안목, 신출귀몰한 행적으로 인해 그는 ‘조신선’이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조생에 대한 정보를 아는 이는 없었지만, 당대 문장가들의 글에서는 자주 오르내리며 유명세를 탔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서 책을 보는 안목이 뛰어난 그를 ‘박아한 군자와 같다(博雅君子)’라고 극찬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기이한 그의 행적으로 인해 조선 후기의 문장가들은 그를 ‘책의 신선’이라고 칭하게 된 것입니다. 책이 귀했던 조선시대에 서적중개상의 역할을 했던 조생의 직업이 바로 책쾌(冊儈)입니다. 일명 서쾌(書儈)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조선의 출판업을 이끈 서적 중개업자이자, 비평가, 평론가의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독서가 권력인 시대
조선시대는 책이 곧 권력(權力)이었던 시대였습니다. 지식인들은 오로지 책을 통해서만 학문을 습득할 수 있었고, 관계(官界)로 나아가 출세의 끈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서적의 유통과 발달로 인해 권력이 분산된다는 것을 사대부들 자신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들의 이기적인 탄압으로 인해 서점의 설치도 막혀 버렸고, 이 틈새를 이용하여 나타난 직업군이 책쾌였던 것입니다. 당시 간서치(看書癡)들의 욕구를 해결해 주면서 서적의 활발한 유통과 출판문화를 이끌었던 시대의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적인 제재와 탄압으로 인해 특정 계층만이 독점하던 권력(?)의 시대가 서쾌들에 의해서 서서히 변모해 가게 된 것입니다.
시대와 환경은 달라졌어도 책의 의미와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년마다 한 번씩 ‘국민 독서 실태’를 발표하는데, 최근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2010년 이후 해가 갈수록 우리 국민들의 독서량과 독서 시간은 줄어드는 추세인 것입니다. 19세 이상의 성인이 하루 평균 22.8분의 독서를 하고, 일 년 평균 9권의 책밖에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학원과 입시에 찌든 초·중·고 학생들의 45분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치이며, 학년이 높아질수록 독서량마저 감소하는 실정입니다.
서적의 출판은 세계적으로 상위 수준을 다투지만 국민들의 독서 지수는 해가 갈수록 낮아지면서 난독증에 빠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에게 많은 책이 출판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난독증을 불러오는 독서 장애가 남의 일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독서에 힘쓰자
그 나라의 문화의 힘은 독서하는 인구와 비례합니다. 사회나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재가 되려면 먼저 독서를 통해 지력(知力)을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연일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원하고자 하는 정보는 손가락 몇 번만 움직여도 언제든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조선의 책이 오직 권력(權力)을 대변하는 상징물이었다면, 현대는 책을 읽고 힘쓴다는 뜻에 ‘권력(勸力)’해야만 하는 대상인 것입니다. 책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마음으로 책을 대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과 저작의 날’입니다. 돈키호테의 저자인 세르반테스와 세익스피어가 동시에 사망한 날이기에 이날을 기념하여 1995년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뜻을 받들어 지금부터라도 봄기운의 향기 속에서 책 읽기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봄, 이제 겨울잠을 깨듯 주변에 잠자고 있는 책들을 깨워야 합니다. 반드시 가을까지 기다려 등불에 의지한 채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합니다. 출판된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손길이 닿아서 재탄생되어야 서적으로서의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가까운 지인들에게 봄소식을 담아 책 한권을 선물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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